너희는 글렀어. 삽이나 들고 강이나 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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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문제다라는 이야기는 2MB 정권이 들어선 이래 계속해서 튀어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20대들이 개새끼(..)라거나 답없는 세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저 글에서 내가 정말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이거 말이다.
안 그래, 라고 말할 순 없다. 분명히 지금의 20대는 그렇다. 내가 그것을 강하게 느낀 건 재미있게도, 사회 현상이나 정치권을 보고 그런게 아니다.
RPG를 하다가 느꼈다.
RPG는 실생활의 축소판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RPG를 하다보면, 놀랍게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성격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치관과 생활상과 일의 수행능력과 인격까지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20대들과 함께 했던 RPG에서 내가 느낀 건...
아무도 '먼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내가 20대일 때에도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누군가가 먼저 해주길 바라고, 먼저 나서길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가려는 사람. 실패할 지도 모르는 모험보다는, 이미 탄탄하게 보이는 길을 가길 원하는 사람.
하지만 그 때에는 그런 사람들이 열에 셋 혹은 넷이라고 했다면....
지금의 20대는 그런 사람이 열에 여섯 혹은 일곱이다.
열에 3~4명인 것과 6~7명인 것은 작은 숫자에서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차이가 아니어 보이지만....
이것이 집단이 되는 순간 집단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예를 들어 전자가 6:4였고 후자가 4:6이라고 한다면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아!'라는 주장을 할만큼의 근거있는 인원수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세대의 대세는 6을 따라가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나서고, 일어서서 싸우고, 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6이 있고 묻어가려는 사람들이 4가 있으면 4는 분명 6에 큰 어려움 없이 묻어갈 수 있다. 비율적으로 따져봐도 묻어가려는 사람을 끌고 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1의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 1.6 정도, 즉 50% 정도의 일을 하는 건 스스로 앞서나가려는 사람들의 성향에 비추어 보면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끌어가려는 사람이 4이고 묻어가려는 사람이 6이 되면, 그 집단은 점점 끌어가려는 사람에 부하가 커진다. 아무리 앞서나가려는 사람이라고 해도, 1이었어야 하는 자신의 부하가 2.5가 되어버리면 이야기는 완전히 틀리다.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의 150%를 더 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누가 생각해도 너무 큰 손해다. 그러다보니 끌어가려는 사람이 손해보는 느낌이 들게 되고, 그럼 끌어가려는 사람은 묻어가려는 사람을 내치거나, 자기 자신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끌어가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즉 묻어가는 편에 서게 된다)
그렇다보니, 세대 자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거다. 10년전의 20대는 친구의 엉덩이를 차면서 같이 가는 일이 가능했다. 친구에게 [그것도 못하냐 이 병신아 내가 챙겨줄 테니 빨랑 튀어와]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세 명의 친구가 있다면 둘이서 하나를 챙기는 정도야,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그리고 웬만큼 뻔뻔하지 않고서야, 옆에서 저렇게 나서서 나아가는 걸 보면 우물쭈물하던 애들도 몇 번에 한번은 같이 동참해서 걸어갔다. 군중심리랄까.
그런데 지금의 20대는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게 하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자의 비율이 너무 많은 것이다. 세 명의 친구가 있으면 나 혼자 나머지 둘을 챙겨야 한다. 챙겨주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악을박을 쓰고 챙겨주면 더 와서 붙는다. 앞서나가는 사람들은 나 하나도 힘든데 왜 내가! 라면서 그냥 내팽겨친다. 그럼 남은 애들은 또 그나마 챙겨주는 사람에게 와서 붙는다. 그러다보면 결국 챙겨주던 사람은 나가떨어지던가, 아니면 역시 모조리 쳐내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건 뭔가 대체.
지금의 20대의 문제는 20대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다. 그저 아주 약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걸 바꿔버렸다.
RPG에서 내가 20대들에게 느낀 것은...
나서려 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틀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때에는 캠페인 내에서 수수께끼를 던져주면, 우선 토론이 벌어졌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부터,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로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검증, 검증할 방법을 못찾겠다면 검증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토의, 그리고 그런 것들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뽑아내지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다섯명이 있으면 다섯명이, 열명이 있으면 거의 열명 모두가 (실제로 11명이서 플레이를 한 적도 있으므로로) 거기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래서 심지어는 내 캠페인이 '세미나 캠페인'이라고 불린 때도 있을 정도였다. 야 우리가 놀러 모였냐 토론하러 모였냐 하면서 화이트 보드에 다이어그램까지 그려가며 토론을 해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열었던 ORPG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수수께기를 풀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정보를 모으지도 못했다.
있는 정보를 수집해 논리적으로 (그게 설사 비약된 논리라고 하더라도) 따질 줄도 몰랐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못하겠어요. 모르겠어요. 라고 했다. 그렇다고 진행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거다. 모르겠으니까 그냥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로 넘겨도 됩니까? 네. 할 거 없어요? 모르겠으니 넘기죠 뭐.
뭐 하러 온 거야?
결국엔 마스터가 하나하나 증거라고 던져준 정보들을 짚어가면서 이게 저렇게 연결되고 그게 이렇게 연결되니까 플레이어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될 거다. 그럼 그 중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니까 남게 되는 가능성들에 대해서만 진실여부를 따져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겨우 진행이 되었다. 이럴 수가. 예전엔 그냥 처음 한 끝만 탁 던져줘도 사람들은 그 꼬랑지 하나 잡고는 줄줄이 줄줄이 수수께끼의 밧줄을 끌어냈다. 바닷속에 숨어있던 실타래들이 마구마구 풀어져 나왔다. 근데 20대의 플레이어들은 그게 안되는 거다. 꼬랑지를 주는 게 아니라 밧줄더미들을 통채로 던져줬는데 풀지 못하는 거였다.
너무 답답했던 나는 후배에게 가서 한탄을 했다. "아니 밥상까지 다 차려주고 놔뒀는데도 먹질 못하더라고! 내가 숟가락까지 들고 떠먹여줘야 되는 거냐?!" 그러자 후배가 대답했다. "응."
더 걸작인 것은 후배의 이어진 말이었다. "그나마 나은 거야. 요즘 애들은 수저들고 떠먹여줘서 먹기나 하면 다행이야. 어떤 애들은 먹여줬는데 씹지도 않더라고."
왜 그럴까?
몇 시간 동안 이어진 후배들과의 대화에 의해 난 결론은 대충 이랬다. "틀리는 것/실패하는 것/잘못되는 것을 무서워한다." 라고.
이건 RPG다.
이건 게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게임 내에서 무엇이건 다 했다. 실패를 해도 됐다. 잘못해서 캐릭터가 죽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그래도 배우는 게 많았고, 재미가 있었다. 놀기 위해 모인 거니까, 우린 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조차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것에 의해서 돌아오는 '승리의 미주'가 정말 짜릿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데 내가 접한 20대들은 그러지 않았다.
짜릿한 승리의 미주는 필요없으니, 쉬운 걸 원했다. '놀면서조차 머리를 써야 해요?'라는 태도가 자주 나왔다.
내가 하고 싶어서 온 RPG인데,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한 RPG도 아닌데, 이렇게나 적극성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서로 맞나 틀리나 눈치만 보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스토리까지 마스터가 진행을 시켜야 하다니?
우리 때는 농담처럼 '시험따위가 RPG를 방해하다니!'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에게는 이런 농담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험난해 보였다. 심지어 노는 것에서 모험심을 발휘하는 것조차 피곤해보였고, 노는 것에서조차 '실패'한다는 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즐기기 위해선 무조건 승리해야 하고, 해피하게, 아무 생각없이, 원하는 걸 얻어야 했다. 그제서야 겨우 즐거운 걸로 보였다.
영웅들을 가지고 영웅담을 만들며 노는 것이 RPG인데,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영웅으로서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영웅적인 행동은 꿈도 꾸지 않았다. '시골 청년에서 영웅으로 커나가는 것'은 20대에게는 상상 밖에 있는 산물인듯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이제 20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위기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20대 전체를 규정짓고 있으며, 그들의 프레임이 되어서,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물론 안 그런 20대가 무척 많다. 정말 많다. 우리나라에 20대가 10만명이 있다면 그 중에 4만명은 분명히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하고, 30대들이 지나왔던 20대와 하등 다를 것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6만명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6만명이, 지금의 20대에 대한 성토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386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항상 20대를 보고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건 분명히 개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20대의 대부분은 그 말을 '나 개인'에게 하는 소리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나는 노력 하고 있어! 참견하지 마! 내 앞길 앞가림하고, 내가 필요해서 이렇게 살아가겠다는데 네가 뭔데! 막말로 뭐 보태준 거 있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대 중에서도 4만명을 차지하고 있는 '괜찮고 정상적이고 개념차며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 저 나머지 6만명을 내버려두고 가선 안된다는 소리이다.
사실 끔찍한 소리이다. 어른들은 우리 땐 더 심했어! 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때에는 분명,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6명이 4명을 지고 가면 될 때였다. 지금은 4명이 6명을 지고 가야 된다. 아주 작은 차이인데도, 지금이 훨씬 더 심하다.
분명히, 6:4라는 비율을 만든 건 386세대의 부모 세대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4:6이라는 비율을 만든 건 지금의 20대들의 부모 세대의 책임이다. (그리고 어쩌면,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원에 시달려 자살자가 속출하는 지금의 10대들은 2:8이나 1:9까지 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동으로 다시 6:4나 7:3으로 갈 수도 있다. 이건 일단 생각끄자 -_-;;)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세대를 보고 스스로 서지 못하는 6명을 지고 가라고 할 건가?
그건 안된다. 하지도 못한다. 386을 보고 6명을 지고 가라고 할 건가? 무리다. 자기들 세대의 낙오자는 결국 자기들 세대가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4명이 6명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사회가 붕괴된다.
4명과 6명으로 갈라지게 되고, 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긴다. 하지만 사회는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건물과 같아서, 바닥이 무너지면 위쪽만 살아남을 순 없다. 쓰러진 6명에 의해 4명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점점 더 붕괴되고, 결국 4명도 같이 붕괴되거나 - 아니면 이민을 가는 수 밖에 없게 된다. 붕괴되지 않은 사회로 말이다.
그럼 결국 선택은 20대들이 할 수 밖에 없다.
4명 쪽에서 보자면, 조금이라도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서 6명의 숫자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숫자로 줄이던가.
6명쪽에서 보자면 자기 스스로 일어서서 4명에 편입되던가. (물론 그것은 내 인생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6명의 책임까지 공동으로 지게 된다는 걸 뜻한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 10명이 힘을 합쳐서, 6명을 데리고 가면서도 4명이 손해를 크게 보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던가.
그게 바로 소위 말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다.
내 생각에, 20대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게을러서도, 멍청해서도, 바보 같아서도, 적극적이지 못해서도, 제 앞가림을 못해서도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30대가 아무리 이렇게 떠들어도, 결국 20대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 주범인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왜냐면 경쟁상대 역시 같은 20대니까.
20대들을 서로 경쟁시키도록 만든 건 지금의 40대~50대이다. (다시 말하자면 386세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20대들은 서로를 '챙기고' 갈 줄 모른다.
386세대가 왜 지금의 10대들에게 기대를 하냐고?
그들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필요없다. 자기 자식이니 잘하려니 하는 거다.
386세대는 지금의 20대를 가열차게 까고 있지만, 50대가 20대를 보고 뭐라 한마디라도 하던가? 아닐 걸?
오히려 말 잘듣고 공부 잘하는 착한 자식세대라 여기고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10대에겐 싹수가 보인다. 20대는 틀려먹었다. 이런 소리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30대가 그런 말을 한다고 그들에게 "그럼 너네가 대안을 내놓던가?"라는 말도 아무 의미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공포'는 30대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20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20대 내부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는 수 밖에 없다.
실패를 하는 순간, 딴 짓을 하는 순간, 도전을 하는 순간 나는 이 사회에서 낙오되고 - 결국 죽어버릴 거라는 그 '공포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20대는 바뀔 수 없다.
그런데 그 공포심을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20대 자신이다.
한 반 10명의 학생들이 소풍을 왔다.
그 산 꼭대기에는 맛있는 과자와 음식이 있다.
그런데 음식이 좀 모자랐다.
A반을 위해서는 8인분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고
B반을 위해서는 6인분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A반에는 분위기가 험악한 동네에서 자라다보니 다리를 저는 학생, 좀 모자란 학생, 몸이 약한 학생 등 정상적인 속도로 올라갈 수 없는 학생이 4명 있었다.
B반은 엄마가 닥달하며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많아서, 뚱뚱하거나 몸이 약하거나 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 6명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A반 10명을 위해서는 (너희가 더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크니까 배가 고플 거라면서) 8인분을 준비해두었고, B반 10명을 위해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덜 먹어도 될 테니) 6인분을 준비해두었다고. 그러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올라간 뒤, 잘 나눠 먹으라고.
A반은 정상적인 6명이서
"잘 못걷는 애들도 있으니까, 한 명이서 한 사람씩 데리고 가자." 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은 "그럼 위에 8인분 밖에 없다고 하니 우리는 모자란 2인분을 더 만들어보도록 할께" 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함께 갔고, 2명이 산을 올라가면서 딴 과일이나 꽃을 먹으며 모두가 1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B반은 정상적인 4명이서 -
6명을 데리고 올라가야 한다고?
산 정상에 6인분 밖에 없는데?
4명은 생각한다. 1명이서 2명씩을 끌고 올라가는 것도 우선 무리다. 게다가 그렇게 용을 쓰고 올라가도 산 정상엔 6인분 뿐이다. 우리끼리만 올라가면 한 사람당 1.2인분은 먹을 수 있는데다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모두를 끌고 올라가면 일은 3배로 하고 먹는 건 한사람 당 0.5인분 가량 밖에 못먹는다.
4명은 그냥 출발한다. 나머지 6명이 어떻게되던 상관없이. 그리고 6명은 기를 쓰고 올라가지도 않는다. 어차피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봤자 못먹을 걸 알고 있으므로. 그렇지만 화풀이를 한다. 짜증을 낸다.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화낸다. 어째서 이런 경쟁 시스템을 만들었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4명이던, 6명이던 상관없이, A반처럼은 되지 못한다. 이런 경쟁 시스템은 무엇을 만들까? 뛰어 올라가는 4명 조차도, 한 사람이 1.5인분을 먹을 수 있어? 그럼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어가면 독식할 수도 있겠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4명조차 서로 경쟁을 벌인다. 뒤쳐지는 순간, 자신은 아무 것도 못 얻는 6명 속에 들어가게 된다. 6명이 7명이 된다. 4명조차도, 느긋하게 산을 올라가 점심을 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이건 소풍인데.
소풍이 소풍이 아니게 된 것이다.
누구의 탓으로?
선생님 탓?
A반의 탓?
아니면 B반의 탓?
결국 누구의 탓을 해도, 아무 것도 해결되는 건 없다.
왜냐면 직접적으로 서로 돕지 않고, 다른 먹을 걸 개척하지 못한 B반에게 책임이 있지만 (A반이 탓을 하듯)
다른 반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A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고 (B반이 탓을 하듯)
과보호를 해서 애들을 저렇게 키운 B반의 엄마들, 제대로 모든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은 학교측, 그리고 중간에 서로서로 도우면서 올라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고 도닥이지 않은 선생님들에게까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원칙대로라면
어째서 똑같은 10명인데 우리에게는 6인분 밖에 준비해두지 않았냐고 학교에, 선생님에게 따져야 한다.
어째서 몸이 약하고 뚱뚱하며 다리가 아픈 걸 '그거에 너네가 제대로 자기 관리를 안해서지'라면서 수수방관한 채 경쟁에 몰아넣느냐고 어른들에게 따져야한다.
A반이 "야 우리들은 서로 돕고, 옆에 있는 과일까지 따가면서 올라가서 다들 알아서 잘 챙겨먹었는데 너희는 뭐냐?" 라고 말한다고 "아 그럼 힘 남아도는 너네가 우리 반애들까지 데리고 올라가던가!!" 라고 화낼 일이 아니란 말이다.
A반을 보고, "너네가 더 나이도 많고 선생님들과 가까우니 우리를 위해 밥을 마련하고 시스템을 짜달라고 해!" 라고 하면, 과연 A반이 해줄까?
B반 스스로도 자기네반을 안 챙기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B반 4명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6명이 배를 곯지 않고 제대로 먹어야 할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싸우지 않으면서, 서로 도울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그걸 찾아내는 것이 바로 B반의 숙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20대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p.s. 당연하지만, '열라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4명 중에 들면 되지?'는 결코 정답이 아니다. 왜냐면,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4명 중에 든다는 건 지금 현재 온 '소풍' 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은 굉장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흔히 학교측과 선생님들이 자주 들이댄다.
p.s.2. 내가 아는 20대들은 실생활에 있어서 '제대로 박힌' 20대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일 수록 이런 문제는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사회적으로, 그냥 '아 나도 20대지만 요즘 20대들 보면 한심해요'라고 한숨을 내쉴 수준은 이미 넘어서버린 듯 해서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 사회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p.s.3. 정치, 더러우니까 관심 없어요. 다 똑같이 더러운 놈들인데 누굴 찍으라고요. 선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지 소풍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것.
선생님과 학교당국이 밉고 싫다고 그들이 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결국 다음 소풍때는 밥이 더 줄어 있을 거다. 그리고 A반보다 B반에 밥을 적게 배정한 건 A반이 아니라 학교라는 거. (근데 아이들은 "왜 너네반이 우리반 보다 밥이 많아?!"라면서 서로 박터지게 싸우기 일쑤다... 쩝)
p.s.4. 실제 선생님이나 학교를 욕하는 글은 아닙니다. 아시죠?
p.s.5. 실제로 저런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토론을 시켜보고 싶다. 학교에서 산 정상에 6인분 밖에 놓지 않았는데 4명은 잘 갈 수 있고 6명은 제대로 못가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최대한 불만이 없게 골고루 나눌 수 있을지 말이다. 의외로 어른들보다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p.s. 6. 이오공감에 올라온 20대들의 항변(?)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후........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점과 글이 유사한 점이 있어서 트랙백. (트랙백한 글이 링크한 그 글 말고, 트랙백한 글)
20대가 문제다라는 이야기는 2MB 정권이 들어선 이래 계속해서 튀어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20대들이 개새끼(..)라거나 답없는 세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저 글에서 내가 정말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게 자기 인생, 자기 삶, 자기 생각 없이 남이 만들어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 장벽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면서 비웃든 뭘 하든 해야하는데, 니네들이 장벽을 만들었으니 니네가 치워 난 손하나 까딱 안할테니까. 라고 팔짱끼고 있는게 참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미래인데, 남에게 맡겨버리니 이러니까 '20대 개새끼론'이 횡횡하는거겠지. 더 웃긴건 그러다가 장벽을 안치워주니까 장벽이 있는 삶을 인정하고 순응하면서 산다는 것이고.
이거 말이다.
안 그래, 라고 말할 순 없다. 분명히 지금의 20대는 그렇다. 내가 그것을 강하게 느낀 건 재미있게도, 사회 현상이나 정치권을 보고 그런게 아니다.
RPG를 하다가 느꼈다.
RPG는 실생활의 축소판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RPG를 하다보면, 놀랍게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성격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치관과 생활상과 일의 수행능력과 인격까지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20대들과 함께 했던 RPG에서 내가 느낀 건...
아무도 '먼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내가 20대일 때에도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누군가가 먼저 해주길 바라고, 먼저 나서길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가려는 사람. 실패할 지도 모르는 모험보다는, 이미 탄탄하게 보이는 길을 가길 원하는 사람.
하지만 그 때에는 그런 사람들이 열에 셋 혹은 넷이라고 했다면....
지금의 20대는 그런 사람이 열에 여섯 혹은 일곱이다.
열에 3~4명인 것과 6~7명인 것은 작은 숫자에서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차이가 아니어 보이지만....
이것이 집단이 되는 순간 집단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예를 들어 전자가 6:4였고 후자가 4:6이라고 한다면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아!'라는 주장을 할만큼의 근거있는 인원수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세대의 대세는 6을 따라가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나서고, 일어서서 싸우고, 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6이 있고 묻어가려는 사람들이 4가 있으면 4는 분명 6에 큰 어려움 없이 묻어갈 수 있다. 비율적으로 따져봐도 묻어가려는 사람을 끌고 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1의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 1.6 정도, 즉 50% 정도의 일을 하는 건 스스로 앞서나가려는 사람들의 성향에 비추어 보면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끌어가려는 사람이 4이고 묻어가려는 사람이 6이 되면, 그 집단은 점점 끌어가려는 사람에 부하가 커진다. 아무리 앞서나가려는 사람이라고 해도, 1이었어야 하는 자신의 부하가 2.5가 되어버리면 이야기는 완전히 틀리다.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의 150%를 더 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누가 생각해도 너무 큰 손해다. 그러다보니 끌어가려는 사람이 손해보는 느낌이 들게 되고, 그럼 끌어가려는 사람은 묻어가려는 사람을 내치거나, 자기 자신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끌어가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즉 묻어가는 편에 서게 된다)
그렇다보니, 세대 자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거다. 10년전의 20대는 친구의 엉덩이를 차면서 같이 가는 일이 가능했다. 친구에게 [그것도 못하냐 이 병신아 내가 챙겨줄 테니 빨랑 튀어와]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세 명의 친구가 있다면 둘이서 하나를 챙기는 정도야,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그리고 웬만큼 뻔뻔하지 않고서야, 옆에서 저렇게 나서서 나아가는 걸 보면 우물쭈물하던 애들도 몇 번에 한번은 같이 동참해서 걸어갔다. 군중심리랄까.
그런데 지금의 20대는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게 하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자의 비율이 너무 많은 것이다. 세 명의 친구가 있으면 나 혼자 나머지 둘을 챙겨야 한다. 챙겨주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악을박을 쓰고 챙겨주면 더 와서 붙는다. 앞서나가는 사람들은 나 하나도 힘든데 왜 내가! 라면서 그냥 내팽겨친다. 그럼 남은 애들은 또 그나마 챙겨주는 사람에게 와서 붙는다. 그러다보면 결국 챙겨주던 사람은 나가떨어지던가, 아니면 역시 모조리 쳐내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건 뭔가 대체.
지금의 20대의 문제는 20대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다. 그저 아주 약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걸 바꿔버렸다.
RPG에서 내가 20대들에게 느낀 것은...
나서려 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틀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때에는 캠페인 내에서 수수께끼를 던져주면, 우선 토론이 벌어졌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부터,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로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검증, 검증할 방법을 못찾겠다면 검증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토의, 그리고 그런 것들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뽑아내지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다섯명이 있으면 다섯명이, 열명이 있으면 거의 열명 모두가 (실제로 11명이서 플레이를 한 적도 있으므로로) 거기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래서 심지어는 내 캠페인이 '세미나 캠페인'이라고 불린 때도 있을 정도였다. 야 우리가 놀러 모였냐 토론하러 모였냐 하면서 화이트 보드에 다이어그램까지 그려가며 토론을 해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열었던 ORPG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수수께기를 풀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정보를 모으지도 못했다.
있는 정보를 수집해 논리적으로 (그게 설사 비약된 논리라고 하더라도) 따질 줄도 몰랐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못하겠어요. 모르겠어요. 라고 했다. 그렇다고 진행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거다. 모르겠으니까 그냥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로 넘겨도 됩니까? 네. 할 거 없어요? 모르겠으니 넘기죠 뭐.
뭐 하러 온 거야?
결국엔 마스터가 하나하나 증거라고 던져준 정보들을 짚어가면서 이게 저렇게 연결되고 그게 이렇게 연결되니까 플레이어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될 거다. 그럼 그 중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니까 남게 되는 가능성들에 대해서만 진실여부를 따져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겨우 진행이 되었다. 이럴 수가. 예전엔 그냥 처음 한 끝만 탁 던져줘도 사람들은 그 꼬랑지 하나 잡고는 줄줄이 줄줄이 수수께끼의 밧줄을 끌어냈다. 바닷속에 숨어있던 실타래들이 마구마구 풀어져 나왔다. 근데 20대의 플레이어들은 그게 안되는 거다. 꼬랑지를 주는 게 아니라 밧줄더미들을 통채로 던져줬는데 풀지 못하는 거였다.
너무 답답했던 나는 후배에게 가서 한탄을 했다. "아니 밥상까지 다 차려주고 놔뒀는데도 먹질 못하더라고! 내가 숟가락까지 들고 떠먹여줘야 되는 거냐?!" 그러자 후배가 대답했다. "응."
더 걸작인 것은 후배의 이어진 말이었다. "그나마 나은 거야. 요즘 애들은 수저들고 떠먹여줘서 먹기나 하면 다행이야. 어떤 애들은 먹여줬는데 씹지도 않더라고."
왜 그럴까?
몇 시간 동안 이어진 후배들과의 대화에 의해 난 결론은 대충 이랬다. "틀리는 것/실패하는 것/잘못되는 것을 무서워한다." 라고.
이건 RPG다.
이건 게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게임 내에서 무엇이건 다 했다. 실패를 해도 됐다. 잘못해서 캐릭터가 죽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그래도 배우는 게 많았고, 재미가 있었다. 놀기 위해 모인 거니까, 우린 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조차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것에 의해서 돌아오는 '승리의 미주'가 정말 짜릿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데 내가 접한 20대들은 그러지 않았다.
짜릿한 승리의 미주는 필요없으니, 쉬운 걸 원했다. '놀면서조차 머리를 써야 해요?'라는 태도가 자주 나왔다.
내가 하고 싶어서 온 RPG인데,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한 RPG도 아닌데, 이렇게나 적극성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서로 맞나 틀리나 눈치만 보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스토리까지 마스터가 진행을 시켜야 하다니?
우리 때는 농담처럼 '시험따위가 RPG를 방해하다니!'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에게는 이런 농담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험난해 보였다. 심지어 노는 것에서 모험심을 발휘하는 것조차 피곤해보였고, 노는 것에서조차 '실패'한다는 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즐기기 위해선 무조건 승리해야 하고, 해피하게, 아무 생각없이, 원하는 걸 얻어야 했다. 그제서야 겨우 즐거운 걸로 보였다.
영웅들을 가지고 영웅담을 만들며 노는 것이 RPG인데,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영웅으로서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영웅적인 행동은 꿈도 꾸지 않았다. '시골 청년에서 영웅으로 커나가는 것'은 20대에게는 상상 밖에 있는 산물인듯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이제 20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위기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20대 전체를 규정짓고 있으며, 그들의 프레임이 되어서,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물론 안 그런 20대가 무척 많다. 정말 많다. 우리나라에 20대가 10만명이 있다면 그 중에 4만명은 분명히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하고, 30대들이 지나왔던 20대와 하등 다를 것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6만명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6만명이, 지금의 20대에 대한 성토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386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항상 20대를 보고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건 분명히 개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20대의 대부분은 그 말을 '나 개인'에게 하는 소리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나는 노력 하고 있어! 참견하지 마! 내 앞길 앞가림하고, 내가 필요해서 이렇게 살아가겠다는데 네가 뭔데! 막말로 뭐 보태준 거 있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대 중에서도 4만명을 차지하고 있는 '괜찮고 정상적이고 개념차며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 저 나머지 6만명을 내버려두고 가선 안된다는 소리이다.
사실 끔찍한 소리이다. 어른들은 우리 땐 더 심했어! 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때에는 분명,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6명이 4명을 지고 가면 될 때였다. 지금은 4명이 6명을 지고 가야 된다. 아주 작은 차이인데도, 지금이 훨씬 더 심하다.
분명히, 6:4라는 비율을 만든 건 386세대의 부모 세대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4:6이라는 비율을 만든 건 지금의 20대들의 부모 세대의 책임이다. (그리고 어쩌면,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원에 시달려 자살자가 속출하는 지금의 10대들은 2:8이나 1:9까지 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동으로 다시 6:4나 7:3으로 갈 수도 있다. 이건 일단 생각끄자 -_-;;)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세대를 보고 스스로 서지 못하는 6명을 지고 가라고 할 건가?
그건 안된다. 하지도 못한다. 386을 보고 6명을 지고 가라고 할 건가? 무리다. 자기들 세대의 낙오자는 결국 자기들 세대가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4명이 6명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사회가 붕괴된다.
4명과 6명으로 갈라지게 되고, 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긴다. 하지만 사회는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건물과 같아서, 바닥이 무너지면 위쪽만 살아남을 순 없다. 쓰러진 6명에 의해 4명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점점 더 붕괴되고, 결국 4명도 같이 붕괴되거나 - 아니면 이민을 가는 수 밖에 없게 된다. 붕괴되지 않은 사회로 말이다.
그럼 결국 선택은 20대들이 할 수 밖에 없다.
4명 쪽에서 보자면, 조금이라도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서 6명의 숫자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숫자로 줄이던가.
6명쪽에서 보자면 자기 스스로 일어서서 4명에 편입되던가. (물론 그것은 내 인생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6명의 책임까지 공동으로 지게 된다는 걸 뜻한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 10명이 힘을 합쳐서, 6명을 데리고 가면서도 4명이 손해를 크게 보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던가.
그게 바로 소위 말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다.
내 생각에, 20대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게을러서도, 멍청해서도, 바보 같아서도, 적극적이지 못해서도, 제 앞가림을 못해서도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30대가 아무리 이렇게 떠들어도, 결국 20대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 주범인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왜냐면 경쟁상대 역시 같은 20대니까.
20대들을 서로 경쟁시키도록 만든 건 지금의 40대~50대이다. (다시 말하자면 386세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20대들은 서로를 '챙기고' 갈 줄 모른다.
386세대가 왜 지금의 10대들에게 기대를 하냐고?
그들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필요없다. 자기 자식이니 잘하려니 하는 거다.
386세대는 지금의 20대를 가열차게 까고 있지만, 50대가 20대를 보고 뭐라 한마디라도 하던가? 아닐 걸?
오히려 말 잘듣고 공부 잘하는 착한 자식세대라 여기고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10대에겐 싹수가 보인다. 20대는 틀려먹었다. 이런 소리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30대가 그런 말을 한다고 그들에게 "그럼 너네가 대안을 내놓던가?"라는 말도 아무 의미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공포'는 30대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20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20대 내부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는 수 밖에 없다.
실패를 하는 순간, 딴 짓을 하는 순간, 도전을 하는 순간 나는 이 사회에서 낙오되고 - 결국 죽어버릴 거라는 그 '공포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20대는 바뀔 수 없다.
그런데 그 공포심을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20대 자신이다.
한 반 10명의 학생들이 소풍을 왔다.
그 산 꼭대기에는 맛있는 과자와 음식이 있다.
그런데 음식이 좀 모자랐다.
A반을 위해서는 8인분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고
B반을 위해서는 6인분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A반에는 분위기가 험악한 동네에서 자라다보니 다리를 저는 학생, 좀 모자란 학생, 몸이 약한 학생 등 정상적인 속도로 올라갈 수 없는 학생이 4명 있었다.
B반은 엄마가 닥달하며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많아서, 뚱뚱하거나 몸이 약하거나 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 6명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A반 10명을 위해서는 (너희가 더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크니까 배가 고플 거라면서) 8인분을 준비해두었고, B반 10명을 위해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덜 먹어도 될 테니) 6인분을 준비해두었다고. 그러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올라간 뒤, 잘 나눠 먹으라고.
A반은 정상적인 6명이서
"잘 못걷는 애들도 있으니까, 한 명이서 한 사람씩 데리고 가자." 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은 "그럼 위에 8인분 밖에 없다고 하니 우리는 모자란 2인분을 더 만들어보도록 할께" 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함께 갔고, 2명이 산을 올라가면서 딴 과일이나 꽃을 먹으며 모두가 1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B반은 정상적인 4명이서 -
6명을 데리고 올라가야 한다고?
산 정상에 6인분 밖에 없는데?
4명은 생각한다. 1명이서 2명씩을 끌고 올라가는 것도 우선 무리다. 게다가 그렇게 용을 쓰고 올라가도 산 정상엔 6인분 뿐이다. 우리끼리만 올라가면 한 사람당 1.2인분은 먹을 수 있는데다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모두를 끌고 올라가면 일은 3배로 하고 먹는 건 한사람 당 0.5인분 가량 밖에 못먹는다.
4명은 그냥 출발한다. 나머지 6명이 어떻게되던 상관없이. 그리고 6명은 기를 쓰고 올라가지도 않는다. 어차피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봤자 못먹을 걸 알고 있으므로. 그렇지만 화풀이를 한다. 짜증을 낸다.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화낸다. 어째서 이런 경쟁 시스템을 만들었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4명이던, 6명이던 상관없이, A반처럼은 되지 못한다. 이런 경쟁 시스템은 무엇을 만들까? 뛰어 올라가는 4명 조차도, 한 사람이 1.5인분을 먹을 수 있어? 그럼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어가면 독식할 수도 있겠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4명조차 서로 경쟁을 벌인다. 뒤쳐지는 순간, 자신은 아무 것도 못 얻는 6명 속에 들어가게 된다. 6명이 7명이 된다. 4명조차도, 느긋하게 산을 올라가 점심을 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이건 소풍인데.
소풍이 소풍이 아니게 된 것이다.
누구의 탓으로?
선생님 탓?
A반의 탓?
아니면 B반의 탓?
결국 누구의 탓을 해도, 아무 것도 해결되는 건 없다.
왜냐면 직접적으로 서로 돕지 않고, 다른 먹을 걸 개척하지 못한 B반에게 책임이 있지만 (A반이 탓을 하듯)
다른 반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A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고 (B반이 탓을 하듯)
과보호를 해서 애들을 저렇게 키운 B반의 엄마들, 제대로 모든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은 학교측, 그리고 중간에 서로서로 도우면서 올라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고 도닥이지 않은 선생님들에게까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원칙대로라면
어째서 똑같은 10명인데 우리에게는 6인분 밖에 준비해두지 않았냐고 학교에, 선생님에게 따져야 한다.
어째서 몸이 약하고 뚱뚱하며 다리가 아픈 걸 '그거에 너네가 제대로 자기 관리를 안해서지'라면서 수수방관한 채 경쟁에 몰아넣느냐고 어른들에게 따져야한다.
A반이 "야 우리들은 서로 돕고, 옆에 있는 과일까지 따가면서 올라가서 다들 알아서 잘 챙겨먹었는데 너희는 뭐냐?" 라고 말한다고 "아 그럼 힘 남아도는 너네가 우리 반애들까지 데리고 올라가던가!!" 라고 화낼 일이 아니란 말이다.
A반을 보고, "너네가 더 나이도 많고 선생님들과 가까우니 우리를 위해 밥을 마련하고 시스템을 짜달라고 해!" 라고 하면, 과연 A반이 해줄까?
B반 스스로도 자기네반을 안 챙기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B반 4명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6명이 배를 곯지 않고 제대로 먹어야 할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싸우지 않으면서, 서로 도울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그걸 찾아내는 것이 바로 B반의 숙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20대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p.s. 당연하지만, '열라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4명 중에 들면 되지?'는 결코 정답이 아니다. 왜냐면,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4명 중에 든다는 건 지금 현재 온 '소풍' 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은 굉장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흔히 학교측과 선생님들이 자주 들이댄다.
p.s.2. 내가 아는 20대들은 실생활에 있어서 '제대로 박힌' 20대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일 수록 이런 문제는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사회적으로, 그냥 '아 나도 20대지만 요즘 20대들 보면 한심해요'라고 한숨을 내쉴 수준은 이미 넘어서버린 듯 해서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 사회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p.s.3. 정치, 더러우니까 관심 없어요. 다 똑같이 더러운 놈들인데 누굴 찍으라고요. 선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지 소풍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것.
선생님과 학교당국이 밉고 싫다고 그들이 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결국 다음 소풍때는 밥이 더 줄어 있을 거다. 그리고 A반보다 B반에 밥을 적게 배정한 건 A반이 아니라 학교라는 거. (근데 아이들은 "왜 너네반이 우리반 보다 밥이 많아?!"라면서 서로 박터지게 싸우기 일쑤다... 쩝)
p.s.4. 실제 선생님이나 학교를 욕하는 글은 아닙니다. 아시죠?
p.s.5. 실제로 저런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토론을 시켜보고 싶다. 학교에서 산 정상에 6인분 밖에 놓지 않았는데 4명은 잘 갈 수 있고 6명은 제대로 못가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최대한 불만이 없게 골고루 나눌 수 있을지 말이다. 의외로 어른들보다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p.s. 6. 이오공감에 올라온 20대들의 항변(?)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후........











덧글
Saga 2009/06/12 16:32 # 답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힌트가 아닌 걸 힌트인 줄 알고 그 방향에서 사건을 줄줄이 풀어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날 시나리오를 모두 애드립쳤습니다.그런데 요즘 애들은 정말 무엇 하나 스스로 하려고 들질 않더군요. 답답하고 환장스러울 정도로...
Silverfang 2009/06/12 16:36 # 답글
저는 전투 상황에서의 전술을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결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쳤습니다.특히 AD&D에서 그랬는데요... 마스터가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적과 상황을 깔아놔도 결국 돌파구가 있거군요. 도저히 안되면 후퇴해서 다시 맞붙는거고...
실생활도 마찬가지라 모로해도 안되는 상황은 우회해서 해결하거나, (나중에 보면)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렵다거나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아무것도' 안되더란 말이죠.
나에루 2009/06/12 17:05 # 답글
현실은 아닌 것 같지만 지옥이라고 해도, 게임은 지옥 같아도 길이 있긴 하던데 말이죠.간만에 보는 무서운 포스팅이었습니다.
(문득 보면서 우클릭이 떠올라 버렸어요.(...))
kazai 2009/06/12 17:07 # 답글
근데 RPG는 몰라서 그런 것도 있는데 취향도 있어요. 솔직히 로망이 없는데 마스터가 시키면 좀 하기가 싫음(.......) 어라 이건 좀 다른가?(........)
kazai 2009/06/12 17:11 # 답글
진지하게 써보자면, 옛날에도 방석을 깔아주고, 함정을 걸고, 발목을 잡아도 절대 안 따라오는 사람이 있긴했지요.물론 그 사람이 히어로 속성을 피해가는거지 고난을 피하는건 아니라서 이야기가 좀 다르긴한데 리더 타입인 사람과 리더 타입이 아닌 사람의 숫자는 사실 별로 차이가 안 난다고 봅니다. 다만 리더쉽의 본질이 변했다는게 오히려 크다고보네요.
과거의 리더가 리스크에 뛰어들게 하는 사람이였다면, 요즘의 리더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측면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니까요. 그런 부분도 좀 고려되어야할듯.
즉 기대가 변했다 라는 걸까요?
AilinLusse 2009/06/12 18:18 # 답글
20대의 잘못이라면... 실패가 곧 낙오를 뜻하고, 낙오되면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는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비판도 가하지 못하고 적응해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생각이 없고 오로지 공부만 강요받던 시절에 (IMF등으로) 바뀌어버린 세상에서, 낙오해버린 (혹은 간신히 살아남은) 부모들을 보면서 남을 깎아내리거나 누르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체득해버렸달까요...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렇게 욕먹고 있는 20대들이 정말 불쌍해요. 저부터도 사실 앞으로 나서는 인간이 아니고 수수방관형 인간일 뿐이지만...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꿈을 말살당한다는 건 참 가엾은 일이죠.
...가여운 건 가여운 거고, 저기 해당하는 애들은 혼이 좀 나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뭐, 무슨 젊은 애들이 패기도 꿈도 희망도 없어... ㅠㅠ
mattathias 2009/06/12 18:37 # 답글
오오, TRPG 얘기가 나와서 반가움 김에 써봅니다. 정말 돌이켜보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려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그래서야 TRPG를 즐기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ellouin 2009/06/12 21:59 # 답글
보통 사회적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그냥 경쟁에서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소외당하고 공격당하고 왕따를 당하지요. 20대 내부에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가진 인간들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 20대가 보기에 저런 도발은 삽질입니다.
소울오브로드 2009/06/13 12:26 # 답글
이제 20대가 끝나가는 이 마당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주르르..ㄱ-;;;
2009/06/15 18:1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플루토 2009/06/15 18:18 #
넵~ 알겠습니다~
댕진이 2009/06/15 20:23 # 답글
남의 블로그에 댓글로 너무 긴글 올리는게 예의가 아닌듯 싶어서 지웠습니다.누군가의 댓글이 달리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제가 위에 올렸던 글의 요지는 현재 20대 후반으로서 자각을 가지고 저보다 어린 20대들과 함께 좀더 노력해야 겠다 였습니다.
자두 2009/07/01 17:24 # 답글
희정누님의 RPG하다 느낀 그 감정 저만 느끼는게 아니었군요저도 요 근래 구인구회를 통해 접한 팀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건데
능동적으로 삽질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피곤했다는 거였습니다;;
한참 선언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설명하고... 이 불편한 분위기는 정말 괴롭더군요.
문득 이 글을 보니 , 멋지고 강력했던 캐릭터를 했을 때 보다는
지혜가 10밖에 안되서 늘 주문실패굴림을 해야 했던 성직자로 팀을 이끌었던게
훨씬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것 같네요. 뭐든지 찔러보고 도전해보고 윽박도 지르고
지난 10여년 이상의 플레이를 돌아봐도 그때만큼 기억에 남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좋을지 모르는 곤란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만
조금씩 노력하면서 주변을 바꾸려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결과가 올거라고 믿고 지냅니다
물론 안올수도 있으니까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습니다만 노력은 합니다.
사람이란게 쉽게 바뀌는게 아니니까요.